바다 위의 시간
밤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검푸른 벨벳처럼 부드럽고 깊다. 선미에 기대어 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빛이 파도에 반사되어 춤추는 듯하다. 이곳은 육지와는 다른 세상이다. 언제나 움직이고, 언제나 변한다. 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찾는다.
처음 배에 올랐을 때는 두려움이 컸다. 끝을 알 수 없는 수평선, 멈추지 않는 엔진 소리, 그리고 흔들리는 바닥.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모든 것이 내 일상이 되었다. 거친 파도도, 뱃머리를 때리는 바람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바다 위에서의 하루는 단순하지만 엄격하다.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하고, 점검하고, 쉬는 시간엔 동료들과 짧은 대화를 나눈다. 때로는 며칠 동안 육지를 보지 못할 때도 있지만, 저 멀리 등대 불빛이 보이면 가슴이 뛰곤 한다. 마치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듯한 반가움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폭풍을 만났을 때였다. 사납게 휘몰아치는 파도에 배는 작은 나뭇잎처럼 흔들렸고, 엔진 소리마저 바람에 묻혀버렸다. 손에 땀이 차도록 로프를 잡고 선체를 점검하며 온몸으로 버텨냈다. 그날 밤,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나 자신이 조금 더 단단해졌음을 느꼈다.
바다는 많은 것을 앗아가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준다. 인내를 가르쳐 주고, 자연을 경외하게 만든다. 바다 위에서는 누구도 거짓을 말할 수 없다. 오직 실력과 경험만이 나를 증명한다. 그리고 그런 날들이 쌓여갈수록 나는 점점 더 바다 사람이 되어간다.
어느 날 이 생활을 떠날 때가 오겠지만, 바다에서 보낸 시간은 내 안에 깊이 남아 있을 것이다. 내 삶의 일부가 되었듯이, 나는 영원히 바다를 기억할 것이다.